바로는 왜 이렇게 완악해야 했을까? 처음에는 아예 무시하고, 가면 갈수록 타협을 하려고 하지만 결국 그 장자가 죽기까지 이르렀다. 왜 그래야 했나?

말이 안 되잖아. 어떻게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으면 죽게 생겼는데.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말한다. 마른 땅으로 걷는다고 말씀하신다.
믿음은 얼토당토않는 것을 믿는 일이다. 하나님께는 불가능 자체가 없음을 믿어야 한다. 내 문제 중 배우자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여지껏 나는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 사업도 그렇다. 불안감에 무언가를 자꾸만 건드렸다.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선택해야 한다.
하나님이 대신하여 싸우시리니 나는 가만히 있겠습니다. 내 세계관의 근간을 바꾸기 원합니다. 당장에 효율적이지 않은 것도 많고 부족한 점도 수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힘이 없으면 저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 나아가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제사장의 역할을 하겠습니다. 주님 나를 인도하소서.

금송아지 사건으로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할 뻔 한 직후,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요청한다.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가 기대하는 영광이 아닌 은혜와 긍휼을 선포하신다. 하나님의 영광은 번쩍이는 빛이 아닌 은혜를 베푸는 것, 긍휼을 베푸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앙은 종종 후행적 이해를 수반하곤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정면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지나가신 후에야 깨닫는다. 당장 이해되지 않아도 지나간 후에 깨닫게 될 지도 모른다.
당장 만나지지 않는 것만 같고, 이해되지 않는 것만 같은 하나님. 시간이 흘러 고백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때 나에게 역사하셨다고. 나를 사랑해서 이렇게 하셨던 거라고. 영광의 모습이 아닌 자비와 긍휼의 형상으로.

창조 이야기와 평행 구조를 보는 듯 하다. 완성된 질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는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는 이야기다. 출애굽기는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에 거할 공간을 만드시는 이야기다. 창조는 세상을 질서로 만드시는 과정이라면, 성막은 하나님이 인간과 다시 함께 거할 질서를 세우시는 과정이다. 구속사를 이미 보여주고 계셨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