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줬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쉽게 말해 가나안 입성은 완전한 안식이 아니다. 이것의 근거: 다윗의 글에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하였나니... 시편 95편.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여호수아 시대에 이미 가나안에 들어갔다.
- 그런데 그로부터 훨씬 후에 다윗이 "오늘"이라 언급한다.
- 그렇다면 여호수아가 준 안식은 최종 안식이 아니다.
즉, 다윗이 다시 '오늘'이라고 말한 사실 자체가 아직 안식이 남아 있다는 증거다. 이것이 히브리서의 논증 방식이다. 히브리서는 구약을 단순한 과거 기록이 아닌 지금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읽는다. 그렇기에 "성령이 이르시되"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한다. 하나님이 안식에 들어간 것처럼 우리도 안식에 힘써 들어가라 말한다.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가만히 있을 수 있어야 한다.
기자는 이어서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다고, 활력이 있다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간다는 게 무엇을 의미할까?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기도가 떠오른다. 대제사장이신, 왕이신 예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이다.
멜기세덱에 대하여 깊은 신학적 설명을 하려다가 멈춘다. 그러고서는 독자들을 혼내기 시작한다. 너희가 아직도 젖만 먹는 수준이어서 이래가지고는 설명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영적인 분별력과 깊이를 가지라고. 너무 인간적이다. 하나님이 말씀을 어떻게 구성하시는지를 느낄 수 있다.
6장에서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고 권면하고 있다. 우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다.
권면을 마치고 다시 멜기세덱의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한다. 아론의 반차는 불완전함을 이야기한다. 아브라함 아래에 있는 레위지파는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쳤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것이 진정한 제사장의 반차라고 말하고 있다. 아론의 반차의 제사장은 죽기 때문에 계속해서 대체되지만, 예수께서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영원하다.
시편 110편에서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말하고 있다. 이것은 다윗의 시인데 메시아 예언으로밖에 읽지 못하겠다. 유다 지파인 다윗 또한 제사장의 모형으로, 왕의 모형으로 예표되듯... 다윗은 하나님의 계시 안에서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인 후대의 누군가를 예언한 것이다.
11장은 참으로 강력하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덧붙인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거라고.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처럼 건넌 이스라엘. 그리고 시험하다가 빠져 죽은 애굽 사람들. 믿음은 나라를 이기기도 하고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한다.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다. 증거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