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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30 아침묵상 - 사울의 마지막 식사

아침묵상 - 사울의 마지막 식사

2025-12-30


아침묵상 - 사울의 마지막 식사

영적 고갈은 차츰 삶으로 번진다

사무엘상 28장에서 사울은 그 나락의 끝자락에 닿는다. 신접한 자들을 쫓아낸 직후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그곳을 찾는다.

담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더러운 쓰레기봉투를 뒤적이듯... 그는 영적 갈급함을 채울 방법을 도무지 찾지 못한다.

인간은 영적 동물이다. 채워짐이 없으면 어떤 방식으로라도 그 빈 자리를 채우려 함을 본문에서 볼 수 있다.

왕으로서의 정당성, 하나님과 동행하는 지도력, 예언자적 인도. 전부 끝나고 말았다.

사울은 이 시점 이후 아웃포커싱되어 세 장을 넘기는 동안 잠시 잊혀진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다시 등장한다.

실패했을지언정 헛된 삶이 아니었다

이미 본문의 주도권은 다윗에게 넘어갔다. 다윗은 놀라운 타이밍으로 자국민을 학살할뻔한 위기에서 벗어나고, 감동적 서사를 통해 빼앗긴 것을 되찾는다. 그런데 사울이 마지막에 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그는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단순히 보면 사울이 버림받았구나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리 보고 싶다. 왕권의 이전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사울은 암살이나 쿠데타로 자신의 이야기를 끝맺지 않는다. 그는 충분히 불순종했고, 아말렉 사건에서 선을 넘었으며 하나님보다 백성을 두려워하고 의식했다. 왕으로서 실패한 게 확실하다.

그러나 그의 삶이 헛되었는가? 결코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은 다윗을 위해 사울을 끝까지 보호하셨다.

만약 사울이 비겁하게 도망쳤거나, 내부 반란으로 죽었거나 다윗에게 제거되었다면? 다윗의 왕권은 처음부터 오염된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사울이 다윗 손에 죽지 않게 보호하셨다. 사울 서사는 외적이었던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끝난다. 다윗의 정당성을 위해 남겨진 장치의 역할을 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울을 회복시키지 않으셨지만, 무너진 채로 던져버리지도 않으셨다. 그가 맡았던 자리를 끝까지 감당케 하셨고, 사울은 그것을 기꺼이 감당했다. 이 대목에서 사울은 더 이상 "악한 왕"으로 남지 않는다. 무너진 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끝까지 책임을 다한 왕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에게 회개의 타이밍이 없었을까?" 라는 질문을 몇 번 던지기도 했지만 그렇게 의미있는 물음은 아니었다. 과거, 현재, 미래가 구분되지 않는 전능자의 관점에서 "이랬다면 어땠을까?" 라는 말은 지극히 무의미해지고 말기에.

사울의 죽음은 마치 경고의 교과서 같다. 왕을 세워도, 제도를 만들어도, 능력이 있어도...하나님을 떠나면 결국 무너진다.

그런데 동시에 하나님은 이를 무질서하게 다루시지 않는다. 실패한 사람조차 역사 안에서 역할을 끝내게 하신다.

그렇기에 사울은 저주받은 인물이 아니다. 경고 자체가 된 인물이다.

28장과 31장 사이, 사울의 마지막 식사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는 잘못을 하고, 사무엘을 가장한 영의 메시지에 완전히 낙담한 사울. 28장의 사울은 송아지와 무교병을 먹고 돌아간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대목이지만 천천히 생각해보자. 무교병과 송아지를 먹고 밤에 길을 떠났다? 이는 출애굽 직전의 유월절 식사와 무척 닮아있다.

유월절 이스라엘 백성은 해방을 향해 급히 나아가지만 사울의 식사는...죽음을 향해 터벅터벅 나아간다.

해방이 아닌 종결을 향한 출발.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한다. 유월절과 닮아있는 이 식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름의 결론을 낸다. 사울에게는 죽음을 향한 이 출발이 해방을 향한 길이라고.

하나님은 침묵하고, 사무엘은 죽었다. 왕권은 다윗에게 넘어간 게 분명하고 전쟁은 패배가 확실하다. 내면은 공포와 죄책감으로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쯤되면 사울의 삶은 사명도, 소망도, 관계도 없는 연명에 가깝다. 긴 긴 감옥에 갇힌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이 식사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애쓸 필요 없는 식사"라고. 더 이상 하나님께 증명할 필요도 없고, 왕으로서 버텨야 할 이유도 없는.

그저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먹어라. 일어나서 떠나라. 그리고 네 마지막 사명을 마무리해라."

사울은 밤에 떠났다. 그의 삶엔 해뜰 날이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그는 긴 형벌과도 같았던 삶에서 해방의 문을 연다. 살아있으나 이미 끝난 삶을 마침내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구원도, 회개도 아니지만, 더 이상 저항할 필요가 없어졌다. 성경은 그를 미화하지 않는다. 지극히 객관적으로 그의 마지막을 읽어낼 뿐이다.

28장과 31장 사이 잠시의 여백. 사울은 실패라는 사명을 받아들이고, 끝내 성공적으로 실패를 완수한다. 다윗 왕권이 자리매김할 수 있는 퇴비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그거면 됐다. 그 어떤 성공보다 성공적인 실패였는걸. 당신의 삶은 수천년이 지난 후에도 누군가에게 울림을 주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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