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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29 아침묵상 - 사울 왕, 그리고 베냐민

아침묵상 - 사울 왕, 그리고 베냐민

2025-12-29


아침묵상 - 사울 왕, 그리고 베냐민

왜 베냐민 지파에서 왕이 나온 걸까?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지정학적으로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경계에 있는 지파라는 것. 쉽게 말해 애매한 지점에 있는 지파라는 것.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애매한 지점에서 이스라엘의 첫 왕을 세웠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왕이 나올 지파는 거의 사실상 정해져 있었다고 본다. 유다 아니면 에브라임. 가장 강성한 유다지파에서 바로 왕이 나왔다면, 권력 독점의 느낌이 너무 강하지 않았을까? 에브라임 지파는 중앙 산지, 남북을 잇는 길목을 쥔 "시스템을 통제하는" 지파였다. 게다가 종교 권력의 중심지인 실로가 그 영역에 있었다. 그래서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 전체로 호칭되기도 한다. 그런 에브라임에서 왕이 나왔다면? 남북 분열은 확정적으로 일어났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애매함을 선택하셨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베냐민 지파는 문제가 많은 지파였다. 사사기를 읽어보면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 사건에서 시작된 내전, 대량 학살을 마주하게 된다. 이스라일의 역사상 가장 어두울지도 모르는 그런 장면에서 "이 지파가 과연 왕을 낼 자격이 있어 보이냐?"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서 성경의 메시지가 터진다. 인간의 왕은 하나님의 대체물이 아니라는 것. 이스라엘은 "우리도 다른 나라처럼 왕을 주세요" 요구했고, 하나님은 "좋다. 그러면 그 한계를 확실히 보여주마" 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가장 강한 지파도, 가장 경건한 지파도 아닌 가장 애매하고 상처 많은 지파가 첫 왕을 배출하게 되었다.

사울은 인간적으로는 외모가 출중하고 키가 무척 컸다. 백성의 눈에는 완벽해보일지도 모르나, 본질은 그렇지 못했다. 하나님은 "왕이 답이 아니다"를 먼저 보여준 후 다윗 왕을 세운다. 개인의 비극, 국가의 흑역사가 아닌 철저한 신학적 장치라고 생각한다.

사무엘의 예언은 틀린 말이었던 걸까?

사울의 나라가 길지 못할 거라 했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그는 사십년 가량을 통치했다. 사무엘의 예언은 틀린 말이었던 걸까?

여러가지 관점들이 있겠지만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첫째로는 "영원의 관점"에서 사울의 나라는 길지 못했다는 것, 둘째로는 이 년차에서부터 불안에 떨며 왕권을 쥐고 있던 사울은 왕이지만 왕이지 못했을 거라는 것.

하나님은 성경에서 무언가 표현할 때 인간의 시간을 초월하는 표현을 하곤 한다. 우리에게 십 년, 백 년은 무척 길지만 당신에게 이는 찰나에 불과한 것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절대자에게 과거-현재-미래는 구분되지 않는다. 사울의 왕조는 수십년에서 끝났다. 이는 영원의 관점에서 길지 못한 수준을 넘어 점보다도 못한 것이다. 다윗의 왕조 또한 몇 대를 걸쳐졌다 해도, 계보가 단순히 이어진 것에서 끝났다면 그건 길다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윗의 왕조가 영원하다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가 탄생한 왕조이기 때문이다.

사울이 왕이 되고 이 년, 그는 성급히 번제를 드림으로 선을 넘었다. 사무엘의 저주 이후에도 사울의 왕권은 나름 길게 유지되었으나, 그는 각종 정신적 고통에 흔들리며 떠는 삶을 살았다. 충신이었던 다윗을 평생 견제하고, 죽이려 하다가 뉘우치고, 또 다시 불안이 도지고...

여기서 한가지 묵상을 제안한다. 영원이 없는 삶, 어디가 끝인지 알지 못하는 삶에 대해 말이다. 장수한다 치고 100년을 사는 삶이라고 해서, 그것이 영원에 비교할 수 있는 것인가? 결국 찰나에 불과하다. 영원 앞에서 우리의 업적은 우주 속의 먼지와 같이 초라해진다. 그렇기에 우린 영원한 것에 집중해야 한다. 이 땅에서의 삶을 뒤로 하자는 게 아니다. 영원을 의식한 삶을 살자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무언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될 테니까. 영원을 소유한 이에게는 조급함이 없을 테니까.

물어뜯는 이리, 아침에는 탈취한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다

베냐민 지파는 작년에도 깊이 묵상했던 적이 있었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으니 짧게 나눠보려 한다. 창세기 후반부 야곱의 축복에서 베냐민 지파는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탈취한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라는 예언이 등장한다. 공격성. 약탈. 생존 본능. 통제되지 않는 힘이 떠오른다. 왕의 이미지보다는 전사의 이미지에 가깝지 않은가?

재미있게도 사울과도 오버랩된다. 초기 사울의 왕권은 탈취하는 삶이었다. 암몬,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민족을 구원하는 영웅의 서사. 하지만 후반부에 가며 자신의 손으로 움킨 왕권을 나누게 된다. 내부는 분열하고, 전쟁의 전리품보다는 질투와 공포가 남았다. 그리고 결국 왕권은 다윗에게 "나눠지게 된다". 유다를 향한 "사자" 예언과 대비되기도 한다. 성급한 이리는 기다리지 못해 조급한 결정을 하고, 불안해한다.

그런 베냐민 지파는 놀랍게도 이후 다윗 왕권을 대적하지 않고, 되레 유다지파의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문제가 많았고, 수많은 소동을 일으켰으며 다윗에게 왕권을 빼앗긴 지파가 유다 편에 선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게시물로 작성해보겠다.

아주 짤막히 베냐민 지파의 인물 한 명을 더 소개해보겠다. 바로 사도 바울이다. (재밌게도 이름이 사울이네) 그는 처음엔 교회를 "물어뜯는"자였고, 나중엔 복음을 "나누는"자가 됐다. 창세기의 예언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성경 재밌지 않은가?

일하러 가야 해서 이만 줄여본다...

그리고 왕이 아닌 목자의 도구, 베냐민 특수전의 무기를 택한다. 베냐민 지파의 가장 강한 무기로, 베냐민 지파의 사울은 몰락의 길을 걷는 아이러니. 왕권은 혈통이 아닌 순종에 있다는 메시지를 느끼게 한다. 다윗은 베냐민처럼 싸웠지만, 베냐민처럼 왕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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